그룹을 꾸리고 그 속에서 연구를 해나가는 일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효율적이고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그룹 운영을 위해서는 구성원간의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의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깔려 있어야 하겠지요.
많은 부분이 변화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구조적으로 폐쇄성이 남아 있어 그룹 리더인 저에 대해 직접적으로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질문 할 학생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리더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룹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경력 사항이나, 출판한 논문 정보로는 알 수 없는 저에 대해 스스로를 소개하고자 이런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추가적인 질문 사항이 있으면, 직접 혹은 이메일 kemin@gist.ac.kr로 물어봐도 됩니다.
사회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직업이 다 필요하듯이, 학문 분야들 자체에도 좋고 나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어느 학문 분야나 첨단은 존재하고, 그 분야의 연구자가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임하느냐에 따라 학문의 중요도도 다르게 비쳐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전공 분야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본인이 "진심"으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질문으로 돌아가, 제가 학부를 졸업하며 대기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만, 간략히 말하자면... 저는 제 스스로 가장 가치있다 생각하는 연구 분야만이 제 평생을 투자할 만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 무엇인가가 아닌,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몰두를 하고 싶었습니다. 얼마간의 고민 끝에 제가 찾던 그 가치 있는 일은 제 자신과 제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 귀속되어 살아가는 지구를 이해하는 것이라 깨닫게 되었고요. 기왕이면 지구를 제대로 알고 싶었기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정치적인 한계에 국한되지 않는 전 지구적인 일들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석사 연구를 진행할 곳을 찾아 교수님들을 면담하며 진행될 프로젝트 얘기들을 들어보며, 물리보다는 화학을 선호하는 성향을 고려해 대기 화학 쪽으로 진로를 굳히게 되었지요.
2023년 올해로, 대기를 전문 분야로 연구하기 시작한지 어느덧 20년 지났습니다. 해를 거듭하며 연구를 지속하면 할수록, 우리의 일상 때문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지구의 가장 연약한(fragile) 부분이 대기라는 사실을 점점 더 체감하며,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깊은 생각을 거듭하여,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유행이 아닌 본인에게 꼭 맞는 분야를 선택하기를 기원합니다.
대기 화학 연구 중에서도 측정이라는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쉽게 믿지 않는 본인의 성향 때문입니다. 실제로 측정한 값을 바탕으로 대기 내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일이고, 또 대기라는 복잡한 계(system)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협력적인 연구(field mission 혹은 field campaign이라고 불립니다)가 필수라는 점이 매력적이지요.
본 연구자가 참여한 다수의 field mission들은 주로 미국·캐나다·그린랜드·중국 등에서 이루어졌고, 이곳에서 함께 일했던 전문가들은 경쟁적이기 보다는 협력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이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연구 대상을 경외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고, 혼자의 힘으로는 연구가 거의 불가능함을 알기에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을 조력자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덕분에 대기 화학 측정 분야는 다소 인간적으로 여유로운 연구 풍토가 지배적입니다. 물론 그만큼 내 몫을 해줘야 전체 science team이 돌아갈 수 있다는 책임감도 함께하지요. 전체 team에 도움이 되는 일원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기 화학 측정 분야에서 첨단을 달려야 하겠지요. 이 의미는 대기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남들이 쉽게 측정하지 못하는 물질들을 측정·분석해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참신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맡아야 하는 역할이 많습니다. 측정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계 혹은 전기 공학자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프로그래머 혹은 레이저를 다루고 자료를 분석하는 물리학자 또는 화학자가 되어야 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 어느 날은 스스로 장비를 측정 site로 옮기고 설치하는 운송업 혹은 설치 기사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도 하지요.
10년전, 지금은 영국 요크 대학에 재직하는 동료(Pete Edward)와 미국 유타의 설원을 장비를 싣고 달리며 나눴던 말이 생각납니다. ‘Field mission scientists로서의 내일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지구의 곳곳을 누비며 어떤 일들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를 우리가 밝혀낸다는 사실이 스릴 있지 않냐’고…
Pete의 말대로, 제 연구자로서의 삶은 수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매번 다른 나를 마주하는 게 일상입니다. 일생 동안 여러 모습의 다른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그 끝은 언제나 진실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멋지지 않습니까. 20년이 지나서도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서 자랑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지금 제가 열심을 다하고 있는 대기화학 측정 분야는 저한테 꼭 맞는 연구 분야임을 자부합니다.
나만의 첨단 측정 기술을 확보하는 것 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연구 주제와 연구자 스스로의 당위성을 갖는 것 입니다. “왜 이 연구를 해야 하는지” 뿐만 아니라 “내가 이 연구에 적합한 연구자인가”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지요. 전자는 후자에 비해 손쉽게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만, 후자는 생각보다 쉽지 않을게 사실입니다. 특히나, 여성 과학자들의 경우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 때문에 더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대학원 과정이나, 이후의 연구를 해 나감에 있어, 본인 스스로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신념은 연구 주제의 난이도와 자신의 능력을 분리해 인식함으로써 갖출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건강한 연구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의 깊이가 심화될수록, 참고할 문헌도 조언을 구할 곳도 없어집니다. 때문에 많은 학생 연구자들이 힘들어하지요. 특히 박사과정의 연구생들이 한번은 꼭 겪는 고비를 잘 넘겨야만 이후의 연구 생활을 보람차고 건강하게 영위할 수 있습니다. 이때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난관이 본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연구가 그만큼 첨단을 달리고 있다라는 반증이라는 것입니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무기력증에 시달리기 보다는, 열심히 하면서도 문제를 객관화하는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를 20년째 해오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요즘 제가 느끼고 있는 연구의 어려운 점은, 함께 할 동료를 찾는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 대기 측정 분야는 100여 그룹의 대규모 집단 협력 연구가 일반적이지만, 아직까지 우리 나라 학계는 협력 연구에 다소 폐쇄적입니다. 지나친 경쟁 사회에서 협력을 통한 시너지를 얻는 직접적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유 분야를 잘 연마하고, 남의 것을 copy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연구에 대한 적절한 appreciation을 하는 연구 문화가 자리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학계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 세대는 급속한 성장 주의 하에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최우선 생존 전략이었다면, 이후의 세대에서는 협력이 생존의 최우선 전략이 되어야만 합니다. 들어본 적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인류의 협력과 연대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인류 최고의 위기 상황의 유일한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숫자와 지표로 나타나는 비교와 경쟁 지표를 바탕으로 한 전근대적 가치 판단이 아닌, 진정한 가치와 성과를 알아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도록 우리의 후속 세대들을 도와주는 것이 제 또다른 연구 전략이고, 목표입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얘기하자면, 제가 사춘기 시절일 때에는 영어 교육을 거부했었습니다. 우리나라 말을 세계어로 만들어야지, 대세를 따라 영어를 배운다고 매달리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치기에 가득 찬 국수주의의 극치였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웃음이 납니다.
뒤늦게 과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영어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기간 동안 토요일 마다 2시간씩 영어 문장을 듣고 받아쓰기를 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유학 원서를 넣은 날부터는 하루에 한 시간씩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생활 영어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했고요. 아마도, 이들 경험이 듣기 능력을 키워줬던 것 같습니다. 말하기는, 미국 유학을 하면서 늘었습니다. 마음 맞는 대학원 동료들과 gourmet club(미식가 클럽)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번 맛집을 찾아다니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영어도 많이 늘고, 삶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아졌었지요.
제 경험을 말씀 드리는 이유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영어는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을 위한 수단일 뿐이므로, 부담 없는 방법으로 일상화되게 하는 게 한 방법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특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GIST 학생이라면, 주변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정기적인 모임을 만드는 것을 권합니다. 모임을 통해 언어적·문화적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교류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현실적이면서 건강한 글로벌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비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일은 기계 및 전기적인 하드웨어적 지식뿐만 아니라, 장비를 제어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소프트웨어적 지식까지도 필요로 합니다. 덧붙여 수집한 자료를 대기적 프로세스에 입각하여 실질적으로 해석하는 대기화학적 지식도 매우 중요하지요. 이들 분야와 관련한 선수 지식이 있는 지원자가 있다면 바람직하겠지만, 본 그룹의 리더조차도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시작하여, 석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익혀온 것 입니다.
앞으로 배워나갈 것들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강한 정신력과 열정으로 어려움을 넘길 수 있는, 그리고 우리 이후의 세대들에 대해 비전을 제시 할 의향이 있는, 생각이 젊고, 패기 있는 미래의 인재를 그룹의 일원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제 연구 철학으로 학생수가 많지 않다 보니, 졸업생도 많지 않은 연구실입니다만, 그 동안 우리 랩을 졸업한 친구들은 박사과정 진학을 위해 유학을 가거나(독일, 미국), 정부 출연 연구소(한국정책평가 연구원, 극지연구소)에 취직을 하여 연구계에 남거나, 대기업(롯데케미컬, 현대-기아 자동차 환경분과)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대부분 진정성 있는 친구들이라 학위 과정에서도 묵묵히 연구를 진행해왔듯,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본 연구실에서는 연구 장비 개발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자료 심층 분석 기술을 통한 세계 수준의 전문 역량과 여러 그룹과의 협업을 통한 소통 능력을 함양한 유연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실에서 습득한 능력에 본인의 의지와 적극성이 더해진다면, 국내·외의 학계 및 연구소(국립환경과학원, 기상 연구소 및 극지 연구소, NOAA CSD, NCAR ACD, 독일 Julich연구소 및 TROPOS 연구소)에 진출하여 국경의 제약 없이 큰 뜻을 펼칠 인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앞으로 졸업 할 랩 식구들에 대해서도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본인 스스로 질문을 작성하며, 이 질문은 꼭 넣고 싶었습니다. 이미 직업을 가진 연배의 사람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는 것이 한국 정서상 통상적이지는 않지만 이 질문만큼 본인의 철학에 대해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름다운 향기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향기는 온전히 저를 반영해야겠지요. 그 향기는 저의 국가 정체성이 나타나야 하고, 제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을 드러내기도 해야 합니다. 그 향기는 제가 속해 있는 각 사회 그룹에서 제가 맡고 있는 제 역할도 고스란히 담아야하고, 제 연구도, 취미나 기호도 담아야겠지요.
이렇게 복잡 다단한 향기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향이 기저에 잘 깔려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 기본이 올바로 정립된 가치관이라고 생각하고, 매 순간의 삶이 그 가치관에 위배되지 않아야 비로소 제가 지닌 향기가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향기를 가지라고 하고 싶습니다. 저도 한국의 제도 아래서 교육받고 길러졌기에 다수의 학생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고, 또 대학원에 진학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다수가 걷고 있고, 큰 어려움 없이 편하고 손쉽게 갈 수 있는 길이라고 해서 그 길이 본인에 맞는 올바른 길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유학 기간 동안 만나온 많은 한국인 유학생들 중, 보석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친구들이 조그만 시련에도 휘청거리며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1문1답에 나와 있는 기존의 질문들에 연구자의 입장으로 임해왔다면, 이 질문만큼은 교육자의 입장으로, 그런 친구들을 위해 대답하렵니다.
지금부터 하루에 단 몇 분만이라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라고,
나는 누구이고,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있으며, 나는 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대답해 보세요. 본인은 무엇 때문에 이 글을 읽고 있는지,
여러분은 한국이라는 사회 제도 하에서 길러져 온게 사실이지만, 그 제도 또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바라는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지금부터라도 본인 스스로에게 집중해 보세요. 5년, 10년 후에도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채 주변에 휩쓸려 살아가게 된다면, 그 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을 테니까… 당신의 고유 향기를 찾아 본인이 진정으로 꿈꾸는 삶을 추구하기를 응원합니다.
이상, 준비한 모든 질문들을 마쳤습니다. 모쪼록 본 코너를 통해 ATMOS Lab의 리더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덧붙여, 추가적으로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연락 바랍니다.